雪國

사진/인상과 풍경 | 2010/01/10 22:37 | 폴.

『크리스마스 캐럴』펭귄클래식 코리아
&
A Christmas Carol and Other Christmas WritingsPenguin Classics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분량을 줄이고 독자 수준에 맞게 문장을 쳐낸 청소년 명작 시리즈 같습니다. 문장은 짧게 잘리고 쓰인 단어는 한정적이며 단어를 건너뛰면서도 종종 불필요한 수식이 끼어듭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번역은 존재할 수 없고 단어가 아니라 의미를 번역하려는 노력을 말할 수도 있지만, 번역이란 게 모두 취향의 문제는 아니에요.

   크리스마스 이야기답게 자주 등장하는 'mistletoe'의 번역으로 '미슬토'와 '겨우살이'가 혼재하는 건 간단한 편집 실수입니다. 초벌 번역 과정에서 고민하다 생길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도 워드 프로그램의 '찾아 바꾸기'를 굳이 언급하고 싶기는 하네요. '네커치프'를 굳이 '꽂았다'고 쓸 이유가 없는데 'with … and white neckerchief'를 '하얀 네커치프를 꽂은'으로 옮긴 건 '행커치프'를 연상한 것 같고요. '네커치프'는 찰스 디킨스의 다른 작품에도 종종 등장하고는 하니1 번역한 분이 찰스 디킨스의 애독자였다면 좋았을 거예요.

This was not addressed to Scrooge, or to any one whom he could see, but it produced an immediate effect. -p65

유령은 스크루지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 -p117

   다듬지 않고 그대로 옮기자면 '유령의 말은 스크루지를 향한 것도, 스크루지가 볼 수 있었던 누군가를 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겠죠. 단순 오역인지 굳이 시점을 바꾼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스크루지가 볼 수 없는 누군가'가 반드시 '유령이 볼 수 있는 누군가'인 것은 아닙니다. 스크루지의 시선에서 묘사된 장면을 유령의 시선으로 바꾸면서 상실한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유령이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말로 바꾸어 버리면 이어지는 '그 말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다'도 존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로 이어진다는 것이야말로 이 문장의 핵심이니까요.

스크루지는 그 아이가 누군지 안다고 말하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p106

Scrooge said he knew it. And he sobbed. -p57

스크루지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예전의 가여운 자신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p107

Scrooge sat down upon a form, and wept to see his poor forgotten self as he had he used to be. - p58

   쪽을 이어 등장하는 두 번의 '흐느끼다'는 영어 원문에서 각각 sobweep입니다. 굳이 끼어든 '~하기 시작했다'는 논외로 하고 두 단어 모두 차라리 '울다'로 옮겼더라면 섬세하지 못한 번역이라고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weep을 '흐느끼다'로 옮기는 건 오역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협의를 광의로 풀 수는 있지만(적절성이 아니라 가능성의 차원에서) 협의를 다른 협의로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틈을 분간해 내고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번역자의 역할입니다. 대상이 문학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수없이 많으며, 우리는 독자들이 마음속으로 그런 기억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크리스마스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많은 유쾌한 기억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똑같은 기쁨을 줄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능력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서로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복된 새해를 맞기를!"이라고 빌어주는 한마디 진심 어린 인사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p36

There are a hundred associations connected with Christmas which we should very much like to recall to the minds of our readers; there are a hundred comicalities inseparable from the period, on which it would give us equal pleasure to dilate. We have attained our ordinary limits, however, and cannot better conclude than by wishing each and all of them, individually & collectively,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p6


   한국어판은 문장 연결이 매우 어색하죠. 'our ordinary limits'는 영문판 미주에 'one whole newspaper column'이라고2 설명되어 있습니다. 편집 실수인지 본문에 번호가 누락되어 있지만, 주석을 모아 놓은 미주이니 책을 꼼꼼히 읽을 번역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는 아니에요. 당연히 맥락도 다릅니다. 크리스마스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반추하는 신문 기고의 마지막에서 '쓸 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이미 주어진 분량을 다 써 버렸고 (굳이 그것들을 모두 쓰지 않더라도) 서로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빌어 주는 인사라면 끝맺음으로 충분하다'는 게 영문판의 요지예요.3

   한국어판과 영문판을 일대일로 비교⁄대조하며 읽지 않았습니다. 한국어판은 다 읽지도 않았어요. 첫 번째로 실린 「크리스마스 축제」가 조금 이상해서 표제작인 「크리스마스 캐럴」을 찾아 읽고 영문판으로 바꾸었으니까요. 모든 건 돈(과  같은 의미에서 시간)의 문제겠지만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책들은 펭귄클래식의 정체성과도 같은 염가가 아니고, 『크리스마스 캐럴』은 A Christmas Carol and Other Christmas Writings』와 언어만 달라 보이지만 사실 가장 긴 The Haunted Man」이 빠진 번역본입니다. 독자는 이미 충분히 양보한 것 같아요.

표지 비교 펼치기


  1.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or, The Parish Boy's Progress』의 그림윅과 『Great Expectations』의 프로비스를 묘사하는 장면,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의 한 장면에도 나와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19세기 영국 특정 계층 남성의 옷차림을 머릿속으로 복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어요. [본문으로]
  2. 한국어판은 영문판의 미주 중 일부를 요약해서 각주로 실어 놓았고 이 주석은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3. 의미가 아니라 (취향의 영역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형식에 관하여 덧붙이자면, 한국어판의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은 원래 같은 모양의 문장이니 번역할 때도 살리면 좋겠어요. 큰따옴표로 묶인 인사말은 찰스 디킨스 자신이 독자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하니 영문판처럼 끝으로 빼는 게 좋겠고요. [본문으로]

   어렸을 때 무척 좋아했던 소설 <천사들의 합창>에 초콜릿과 연관된 소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히메나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는 학생 두 명이 외진 저택의 탐스러운 장미를 몰래 꺾기로 합니다. 물론 주인 할아버지에게 들켜 몹시 혼나요. 그러나 사연을 들은 할아버지는 두 꼬마가 초콜릿을 선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반 학생들과 초콜릿을 나누어 먹습니다. 이 이야기가 유난히 잊히지 았았던 건, 초콜릿이 어른을 위한 선물로 등장한 데서 온 생경함과 낯선 단위로 인해 비현실적일 정도로 풍성하게 그려진 제 머릿속의 초콜릿 한 봉지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종이 봉투가 묵직하도록 잔뜩 담긴 초콜릿을 나누어 먹는 장면 자체가 주는 충만한 행복감 역시 비할 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되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는 동시에 충분히 기쁘고 재미있을 만한 선물을 찾던 중 히메나 선생님의 초콜릿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포장에 맛있는 초콜릿이라면 일상적이고, 한가득이라면 선물답게 비일상적인 재미까지 있겠다 싶었어요.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코스트코에서 트뤼플 프렌치 Truffles French 초콜릿을 샀습니다. 두 상자가 한 묶음이에요. 상자 안에는 500g씩 두 봉지의 초콜릿이 들어 있습니다. 한 봉지는 제 몫. 포장지에 따르면 한 봉지에 60개 정도 들어 있다는군요. 차가운 제 손에 묻어날 정도로 잘 녹아서 입 안에서는 금세 사라집니다. 시식할 때는 크게 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답니다. 저는 살짝 신맛이 감도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겨울이어서인지 달고 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도 기분 좋네요. 단순한 셈으로 친구들도 60배만큼 기뻐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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